잡음의 바다를 건너, 소년은 우주행 편도 티켓을 끊었다
결핍은 결코 가난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무언가를 향한 가장 뜨거운 갈망의 다른 이름이었다. 지금처럼 소음을 완벽히 지워내는 기술은 존재하지 않았으나, 대신 그 시절 우리에게는 잡음 속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내려는 예민한 감각이 있었다. 주파수를 맞추기 위해 다이얼을 미세하게 조율하던 손끝의 감각은, 혼돈 속에서 본질을 골라내는 인문학적 성찰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경기도 외곽, 어느 한적한 마을의 여름은 늘 소란스럽고도 뜨거웠다. 인근 산성 유적지에 닿기 위해 버스에서 내려 땀을 흘리며 한참을 걸어야 했던 비포장 흙길, 체면 따위 상관없이 빤스 차림으로 시냇물에 뛰어들어 고기를 잡던 소년들의 함성, 그리고 영화 한 편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덜컹거리는 버스에 올라 인근 도시로 향할 때면 코끝을 찌르던 지독한 경유 냄새와 귀가 먹먹해질 만큼 거세게 울려대던 엔진 소리까지. 유년의 기억은 그렇게 몸으로 부딪히고 살을 비비며 배우는 ‘문명화된 야생’ 그 자체였다. 그것은 지도 없이 길을 찾는 법을 스스로 터득해 나가는, 삶이라는 야생을 향한 생존의 훈련이었다.
그전까지 내 방의 정적을 채우던 것은 작고 투박한 모노 라디오뿐이었다. 소리는 언제나 한 방향에서만 정직하게 흘러나왔고, 나는 그것이 소리가 가진 유일한 질감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평면적이던 내 세상에 이전에 없던 스테레오 카세트 라디오가 자리를 잡았다. 설레는 마음을 누르며 낡은 책상 위 기계의 안테나를 길게 뽑아 올렸다. 곧이어 ‘치익-’ 하는 FM 라디오 특유의 히스(Hiss) 노이즈가 정적을 깨고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조심스레 다이얼을 돌려 주파수의 파동을 가늠하자, 거짓말처럼 그 거친 잡음의 바다를 가르며 익숙한 드럼 비트가 선명하게 터져 나왔다.
“One way ticket, one way ticket…”
그것은 단순한 팝송이 아니었다. 스테레오 헤드폰을 통해 왼쪽 귀에서 오른쪽 귀로 질주하는 신시사이저 소리는, 평면적인 ‘모노(Mono)’의 세계에서 입체적인 ‘스테레오(Stereo)’의 우주로 나아가는 전이(Transition)였다. 도시로 향하던 낡은 버스의 속도보다 훨씬 빠른 비트가 소년을 전혀 다른 차원으로 실어 날랐다.
시골길의 흙먼지 냄새는 소거되고, 헤드폰 너머로 화려한 조명이 반짝이는 미지의 도시가 선명하게 그려졌다. 지지직거리는 노이즈는 오히려 그 세계로 향하는 여행의 설렘을 증폭시키는 필연적인 전주곡이었다. 시냇가를 누비던 소년은 그날, 음악이라는 이름의 ‘편도 티켓(One Way Ticket)’을 끊고 더 넓은 우주로의 항해를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부족함 속에서도 주파수를 맞추며 기다릴 줄 알았던 인내심과, 잡음 속에서도 본질을 찾아내던 예리한 감각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이제는 노이즈 하나 없는 매끄러운 디지털 세상을 살고 있지만, 가끔은 그 지지직거리던 라디오 소리가 사무치게 그립다. 그 불완전한 소리 속에야말로 인간의 가장 완벽했던 청춘과, 삶을 향한 원초적인 생명력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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